사진=이애란TV 제공
'강남좌파'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정의대로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소득수준과 라이프스타일은 강남주민 같은 사람”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용어들이 미국에서는 리무진 좌파,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 프랑스에서는 케비어 좌파가 있다. 모두 가난한 서민을 동정하고 불평등에 핏대를 세우고, 공교육을 주장하지만, 사생활은 호화스럽고, 자녀들은 최고 사립학교를 보내고, 거리에서 서민과 노동자들이 투쟁을 할 때 자신은 쏙 빠져서 집에서 케비어와 고급 샴페인을 즐기는 자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의 이중성을 경멸하고 비꼬는 말이다. 공산 국가에서는 이런 이중적인 인간들이 존재하지 못함은 공산국가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살롱 좌파라는 말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있다. 그는 625전쟁이 김일성이 아니라 미국이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마오주의와 공산주의를 옹호했던 좌파였지만, 물질적 향유와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 등 지극히 부르주아적적 사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년에 빈곤해지자 상금만 받을 수 없겠냐고 노벨상 위원회에 문의를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실존주의 철학의 흡입력은 대단하였다. 필자도 한때 그의 철학에 심취하여 친구들에게 그의 사상을 자랑스럽게 설파하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런데 강남좌파, 케비어 좌파, 살롱좌파와는 급이 다른 좌파가 있으니 이름하야 브라만 좌파다. 브라만은 인도 카스트 제도 중 최상의 계급이다. 한국에서는 조국, 장하성이 이에 속한다고 어느 보수 언론인이 말한 바 있다. 허나 그 말은 그들에 대한 과찬이요, 원조 브라만 좌파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한다.
브라만 좌파는 대학의 연구실에 처박혀서 마르크스 이론을 다듬고 손질하고 치장하여 세상에 내놓는 역할을 한 최고급 두뇌들로 최고의 학식과 영민함을 갖춘 자들이다. 대학 강단에 서서 막강하고 이색적이며 난해한 이론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넋 나가게 하였으며 세계에 책을 팔아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한편, 수많은 청년 좌파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사진=인터넷 캡처
1) 프랑크푸르트 학파
브라만 좌파의 원조로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0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의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네오막시즘의 사회 이론가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포스트 마르크시즘의 위대한 금자탑을 세운 자들이며, 마르크스주의를 교조주의 화하였고, 서구 유럽과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해체주의, 문화상대주의, 성 해방, 정치적 올바름에 물들게 만든 원흉들이다.
2)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구성
대표적인 인물로는 허버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등이 있다. 이들이 생겨난 배경은 그들이 확신하였던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는 공산혁명에 의해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정론이 빗나가고, 자본주의가 오히려 대중의 동의하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발전한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혁명을 이룩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만으로는 부족함을 자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나치즘과 자본주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였다.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심리학자, 철학자, 미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모두 이 방주에 승선하였고 그중 일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가 하선하였다.
3) 편견에 관한 연구 시리즈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이 학파는 “편견에 관한 연구 시리즈”(a series of “studies in prejudice)를 썼다. 이 시리즈는 전통적 서구 문화를 신뢰하는 자는 누구나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sexist), 파시스트가 되고 정신병 앓고 있는 자로 간주하였다. 서구의 전통적 가치관을 파괴하려는 음흉한 시도였다. 사회심리학 분과 책임자가 된 사회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결합시키려고 했다. 인간이 성적으로 억압돼 있다는 프로이드 심리학은 인간 해방을 추구한다는 마르크시즘을 선전하기 위해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르쿠제9Marcuse, Herbert)
허버트 마르쿠제, 독일 태생의 미국 철학자(1898~1979). 마르크스 사회주의 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에 기초를 두고, 고도로 발전된 현대의 관리 사회가 초래하는 인간 소외의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ㆍ비판하였다. 기성 질서를 정면에서 비판하는 그의 사상은 1960년대 학생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저서에 ≪에로스와 문명≫, ≪소련 마르크스주의≫, ≪일차적 인간≫, ≪이성과 혁명≫ 따위가 있다. (사진. 글=WORDROW 캡처)
4) 신좌파의 대부 마르쿠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하선하여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 자리를 잡은 허버트 마르쿠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아버지가 섬유제조업체 사장이었던 최상류층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독일을 중심으로 전통적 서구 문화를 파괴하였다면, 그는 미국의 문화를 파괴하였다. 마르쿠제가 ‘신좌파의 대부’(father of the New Left)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는 주체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흑인, 학생, 페미니스트 여성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연합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되어서, 좌파들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인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 노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본격적으로 문화 파괴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다른 학자들의 아주 추상적 작품들을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썼다. 그의 책 『에로스와 문명』(Eros and Civilization)에서 그는 성을 억제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쾌락 원리를 실재 원리로 고양시키고, 일없는 오로지 놀이만의 사회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이 아니라 섹스를 하라”(Make love, not war)고 반전(反戰) 에로스 사상을 외쳤다.
또한 그는 “해방의 관용”을 역설했다. 그가 말하는 관용이란 좌파로부터 나오는 모든 생각에 대한 관용, 우파로부터 나오는 모든 생각에 대한 불관용이었다.
1960년대 마르쿠제는 미국에서 대학교수로서 음탕(licentiousness)과 사회적 무책임(social irresponsibility), 세대 간에 그리고 가족 간 갈등을 유발하는 “권위와 가족”이라는 책으로 권위 부정(rejection of the authority) 등 퇴폐적이고 좀먹는 관념들(corrosive concepts)을 좌파 학생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신좌파의 족장 구루(chief “guru”)가 되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 마르크스주의를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에 주입했다. 마르쿠제의 영향 아래 일어난 유럽 68학생 운동권은 3 M(Marx, Mao, Marcuse: 마르크스, 마오, 마르쿠제)를 영웅시하면서 다른 3K (Kinder, Küche, Kirche : 자녀, 부엌, 교회)를 전복하고자 했다.
현재 미국 건국의 뿌리가 된 청교도 정신과, 독립 선언문의 기초가 된 자유와 평등사상을 뿌리째 갉아 먹고 있는 1619 프로젝트(미국 독립기념일이 1776년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처음 미국에 상륙한 1619년이라는 주장), BLM 운동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동성애 옹호, 성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궤변, 문화상대주의, 모든 차별적 언어를 없애자는 정치적 올바름은 마르크스 노아의 방주에 승선했던 브라만 좌파 마르쿠제가 미국에 내리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진=조선일보 2021년 2월20일 토요일 신문 중 일부.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한국에도 판박이처럼 벌어지고 있다.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전파될 때는 저질 문화부터 전파되는 것처럼, 미국에서 벌어지는 저질 좌파 문화가 한국의 엘리트 좌파에 의해 고상한 문화로 둔갑되어 수입되었다. 문화상대주의, 성 해방, 정치적 올바름은 보수주의를 수구꼴통으로 전락시켰다.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없앴으며, 북괴 3대 세습에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좌파의 잘못에는 관용, 우파의 잘못은 불관용이라는 정서가 토착화되었다.
이로 인해 좌파정부의 명령에 저항 없이 동의하는 풍조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방역으로 이어져 유대인이 자발적으로 가스실에 걸어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토마 피케티(1971~)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학력 엘리트인 브라만좌파가 자산 엘리트인 상인우파와 결탁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양극화 구조를 공고히 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좌파는 더 이상 부를 재분배하고 서민층을 대변하는 원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좇는 데 그치지 않고, 학력과 주거지로 구분되는 계급 차별의 울타리를 높이면서 세습을 통해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를 차버리고 있으며, 이에 한술 더 떠 쌓아놓은 부와 권력을 한 충 더 올리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산 엘리트인 경제인 연합과 결탁하고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