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인터넷 캡처
이 시대에서 보기 민망할 뿐 아니라 역겹기까지 한 특징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완벽할 정도로 개성에 대해 무관심하여,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외모를 갖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마치 개성이 없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이고 개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라 생각하여 어떡해서든 자신의 개성을 말살해서 남들과 똑같아 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까지 눈썹 문신을 하여 전부 비슷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는데, 특히 젊은 남성들의 개성 없는 외모와 여자처럼 지나치게 유행을 따르고 외모 가꾸기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아 남성다움이 사라지게 된 것은 보기 싫어 눈을 감고 싶을 정도다.
남성다움이 시대에 뒤떨어진 야만, 세련되지 못함 뿐 아니라 무식하거나 능력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상한 풍조로 인해 남성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신의 남성다움을 가장 쉽게 지울 수 있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귀걸이와 피어싱을 하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상처나 반점만 생겨도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 떨고, 천편일률적인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은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저질적이며 한심한 문화이다.
젊은 여성이 여성다움을, 젊은 남성이 남성다움을 뽐내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다. 성적인 강렬함에 서로 매료되는 것은 원시적인 것도, 비지성적인 것도 아닌 지극히 솔직하고 본성적인 것이다. 또한 남성다움은 기개, 강직함, 단호함, 용기, 정의감의 표현이기 때문에 남성다움은 사회가 건전성을 잃지 않고 발전해가는 주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남성다움의 약화로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활기를 잃고 퇴폐적이 되었으며, 불의를 당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껴도 저항할 줄 모르며, 원망조차 하지 않으며, 패배주의에 젖어 미리 소용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한 채로 살고 있다.
젊은이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이 개성 없이 살아가는 방식에 만족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도 얼마든지 한평생 살 수 있기 때문에 개성을 가지고 남다르게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도리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안전을 해치고, 사회에 저항하는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겨,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멀리하고 있는 지경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개성이 인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주관이 없이 원숭이처럼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사람을 재미있어 하지만 절대로 존경하지 않으며, 독창성 없이 모방한 결과물은 그 어떤 것도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개성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적용하지 않는 것, 개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중요성의 정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한국의 현재처럼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중요치 않게 여겨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공권력마저 개성 없이 살도록 집단화, 획일화 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면 과연 나라가 발전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문명을 이끌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선구자가 나올 수 있을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고 간에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분명히 문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그런 국가에서 다양한 의견들과 다양한 삶의 실험들이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훔볼트는 “개개인이 쉬지 않고 자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목표, 특히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시도 잊지 않고 바라보아야 할 목표는 각자의 개성에 맞춰서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자유와 다양한 상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며, 이 두 조건이 결합될 때 개개인의 활력과 갖가지 다양성이 생겨나고 이 둘이 합쳐져서 독창성을 이루게 된다.” 하였다. 훔볼트의 이 말은 왜 서양이 세계의 문명을 이끌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한 대목이다.
개성은 독창성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독창성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게 할 뿐 아니라, 이전에 진리라고 믿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며, 새로운 실천을 처음으로 시작해서 세상을 계속 새롭고 활기차게 만들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상과 예술품을 만들어 삶의 품격을 높이고 삶의 영역을 확장 시킨다.
이 시대 한국인처럼 공권력의 정당하지 않은 압제에 복종하는 데 익숙해지면, 한국인의 본성 전체가 둔해지고 무뎌지며, 개성과 독창성은 짓밟혀지고 말 것이다. 개개인의 본성이 마음껏 발휘되고, 위로부터의 부당한 강제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개개인이 그런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부당한 강제가 통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비록 독재가 행해지거나, 이 시대의 코로나 같은 세계적인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한국과 같은 최악의 결과는 낳지 않을 것이다.
개성을 짓밟고 말살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 방역, 혹은 국민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되더라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독재다.
조금이라도 독특한 취향이나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거의 범죄 수준으로 꺼리는 것이 오늘의 한국처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거의 모든 사업체와 공무원까지 만연하고, 강요된 획일화를 당장의 불이익 때문에 수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은 죽어가는 나라를 보는 것만큼이나 애석한 일이다.
홍정욱 전 의원은 지난 2021년 7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뉴욕 통관에 5분도 안 걸렸고 마스크 착용은 대부분 선택이었다"며 "코로나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나라지만, 빠른 속도로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반면 국내는 입국 통관도 1시간, 백신을 맞고 검사 받은 능동감시자임에도 매일 앱 작성에 전화 오고, 문자 오고, AI 전화까지 온다”며 “결국 ‘증상 없다’는 내 자발적 답변을 듣기 위해”라고 지적했다. 홍 전 의원은 글을 마무리하며 '#코로나전체주의'에 해시태그를 달았다. 뉴욕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함께 올렸는데, 사진에 나온 외국인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사진=홍정욱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천재성은 오직 자유의 대기 속에서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다. 3년 동안이나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은 자유의 대기를 없애서 천재성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없도록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독창적 혹은 천재적이라는 말속에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개성이 강한 천재들은 정형화된 교육, 통제, 관습을 감당하기 어렵다.
만일 그들에게 그것을 강요할 경우에는 타고난 천재성은 죽고 말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그들에게 주어진 천재성으로부터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순영 칼럼리스트 /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