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중 FTA 발효 체결 당시 서울 코엑스에 걸린 환영 현수막.사진=연합뉴스
지난 2015년 12월 20일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이 10주년을 맞이하며 중대한 전환점에 섰다.
체결 초기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선점할 기회로 기대를 모았고 수년간 수백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최근 양국 교역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2022년 정점을 기록했던 한중 교역 규모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며, 특히 중국의 급격한 산업 고도화와 기술 자립으로 인해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우리 정부는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한중 에프티에이(FTA) 2단계(서비스·투자 분야) 협상 재개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수출입 화물이 쌓여 있는 부산항 신선대부두.사진=연합뉴스
◆ 대중국 무역 흑자 시대 막 내리고 적자 고착화 우려
28일 산업통상부의 분석에 따르면, 한중 FTA 발효 이후 양국 간 교역액은 2015년 2천274억 달러(약 한화 295조6천20억 원)에서 2023년 2천729억 달러(약 한화 354조7천70억 원)로 20퍼센트(%)가량 증가했다.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 수출 품목 다변화와 함께 저렴한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 증진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존재했다.
그러나 양국 교역액은 2022년 3천103억 달러(약 한화 403조3천90억 원)를 정점으로 기록한 뒤 2023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으며, 올해 11월까지의 대중국 교역액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4퍼센트(%) 줄어든 2천426억 달러(약 한화 315조3천80억 원)를 기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흑자 기조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2018년 556억 달러(약 한화 72조2천80억 원)라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지만, 2023년에는 1992년 수교 이래 31년 만에 첫 적자로 전환되었다.
올해 역시 100억 달러(약 한화 13조 원) 내외의 적자가 3년 연속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교역 협정의 문제를 넘어, 중국 산업의 급속한 기술 발전과 '중국제조 2025' 같은 국가 전략 하에 이뤄진 첨단 부품 및 중간재 자급도 상승, 그리고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외부 환경 변화의 복합적인 결과로 분석된다.
과거 한국산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생산하던 구조가 깨지면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산업의 대중국 수출 기반이 약화되었고, 시장에서는 대중 무역 적자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밝은 표정으로 손잡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다이빙 주한 중국 대사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다이빙 주한 중국 대사(왼쪽)가 지난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중 FTA 10주년 세미나에서 귀엣말을 한 뒤 밝은 표정으로 손잡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서비스·투자' 분야 확대로 난관 돌파 시도
정부는 더 이상 상품 수출만으로는 중국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판단, 잠재력이 높은 서비스와 투자 분야로 교역의 저변을 넓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를 계기로 11년 만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정상회담 이후 당국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만나 FTA 2단계 협상 가속화에 합의했으며, 희토류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소통도 지속하기로 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여 통상 수장과 만날 예정이며, 지난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중 FTA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는 "한중 FTA를 상품 중심 교역에서 잠재력이 큰 서비스 등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산업통상부는 관계 부처와 협력하여 내년 베이징에서 제7차 한중 FTA 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협정 이행 상황 평가 및 협력 사항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정관 장관, 중국 상무부 부장과 악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상무부에서 왕 원타오 중국 상무부 부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한한령' 해제 기대와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 과제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통해 서비스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령) 완화 가능성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2017년부터 한국 문화 및 관광 산업에 대한 제재가 이뤄졌으며, 우리 정부는 꾸준히 한한령 철회를 요청했지만,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한한령의 존재를 부인하며 상황이 지속돼 왔다.
최근 중국 측이 서비스 개방에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한한령 완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최근 중국을 다녀왔는데, 중국 쪽에서 서비스 개방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고 언급하며, 이는 중국의 자국 서비스 산업 성장 목적과 함께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조 실장은 또한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한중 FTA 고도화의 결정적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이와 더불어 FTA 2단계 협상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어야 하며, 한국 기업들의 고질적인 애로사항인 지식재산권에 대한 명확한 보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퇴장한 국제 무역 질서에서 중국이 새로운 리더 역할을 자처하는 만큼, 이제는 우리 기업들에게 지식재산권 보호와 제도적 투명성, 즉 예측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