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한국 상고사(上古史)를 다룬 책 ‘환단고기’가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우리 헌법 전문에 규정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이라는 민족 정신을 외면하고, 우리의 영광된 역사를 부인하는 반국가 세력이다.
영광된 우리의 민족사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계승시켜 줌으로써 우리 후손들이 자랑스러운 긍지를 지닌 인류 문화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역할이 국사학자들이 맡은 막중한 임무이다.
국사학자들의 그런 노력이야말로 국력 성장의 원동력이다.
◆ 이재명 논쟁 속 환단고기 정사 결론 중요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이재명이 불러일으킨 환단고기 위서 논쟁에 대한 올바른 결론 정립이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환단고기가 날조된 거짓 역사 기록이냐 정사냐에 따라 우리 국민들과 후손들의 국가관과 민족관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환단고기가 한국사의 정사요 한민족의 민족정사임을 믿고 싶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관에 입각할 때 자신의 정체성은 물론 우리 국민과 민족의 정체성이 위대해지고, 우리 후손이 위대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당시 언급한 유사 역사학 '환단고기'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환단고기'를 다룬 서적이 놓여 있다. 환단고기는 고대 한민족이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았지만 주류 역사학계는 이를 위서라고 보고 있다.(글.사진=뉴스1 캡처)
◆ 지정학적 악조건 속 강국 정체성 회복 필요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서쪽에 중국, 동쪽에 일본, 북쪽에 북한과 러시아로 둘러싸여 있다.
이를 악조건으로 생각하여 주변 모든 나라에 비해 우리가 약소 국가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처지는 비참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나라가 옛날에 세계와 아시아 대륙 전역의 지배 국가였듯이 지금도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서 막강한 정체성을 지닌 강국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우리의 입장이 완전히 달라지고 국제사회에서의 처세 자세가 마치 미국처럼 강대국적 자세가 될 것이다.
◆ 개인적 경험으로 본 민족 정체성의 중요
이와 관련해서 멀리 갈 것 없이 필자 자신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1949년 7월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었다. 그리고 다음 해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 국면에 들어갔다.
필자도 강보에 싸여 보문 댐 안쪽 산골 마을 남씨 집성촌으로 피난을 가서 살았고 부친은 군대에서 군 복무를 하셨기에, 아버지 얼굴을 못보고 산골 마을에서 홀어머니 슬하에 동네 애들에게 구박을 받고 살았다.
어머니는 친척들에게서 구걸하다시피 품앗이를 하여 나와 엄마가 겨우 목숨만 연명했다.
그런 와중에 국민학교 갈 때를 놓치고 말았다.
나 또래와 형들은 다 덕동국민학교에 다녔는데 나만 홀로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국문과 산수를 배워야 했다.
산골이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동기생들이 2학년일 때 아버지가 대구에 있는 육군본부에서 제대를 하시어 우리 식구(세 살 때 홍역으로 죽은 내 남동생과 함께)가 보따리를 싸들고 대구로 이사를 가서 신천동의 아주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다.
그땐 다 가난했으므로 당연히 어린 필자 역시 우리나라가 원래 힘없고 가난한 나라려니 생각했고 가난이 숙명인 것처럼 여겼다.
그리고 남침을 해온 북한 공산 집단을 매우 저주했으며 공포스럽게 생각했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부밖에 없었다. 유치원도 못 다녔고 학교도 1년 늦게 들어갔으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대구에서 가장 우수한 중학교에 시험을 쳐 합격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러나 외톨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공부만 하던 필자가 중2가 되어 문득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세계 속에서의 위상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행적 이런 것들에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는 1963년으로서 4·19혁명과 5·16 군사혁명을 맞은 한국사의 격동기였다.
필자가 보기에 그때의 대한민국과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실로 ‘형편없는 존재’였다.
이때 비로소 발견한 너무나 실망스러운 나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인해 필자는 모든 의욕을 잃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장차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된 들 힘없는 약소국가 국민인데 전 세계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데... 이런 자괴감 때문이었다.
믿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나 하고 독재를 하다가 쫓겨났으며 군인들이 들고 일어나 정치를 하고 있고...(그러나 혁명공약은 훌륭했다. 감동적이었다.)
그때 필자의 인생관이 정립되었다.
'나는 공부해서 출세를 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부흥 강국으로 발전시키는데 전력을 다해야겠다. 세계가 알아주는 대한민국이 되어 세계적인 유명인으로 성공해야겠다.'
이렇게 나 자신이 아닌 나라의 발전을 우선시 하는 인생관을 정립했다.
◆ 다물운동과 환단고기 발견
이런 인생관을 가지고 살면서 1972년에 공군 장교로 입대하고 K-2에 복무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훌륭한 정치에 존경과 신뢰를 보내며 나라가 날로 국방이 튼튼히 되고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이러한 국가의 만족스런 성장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초급 장교들을 중심으로 만주땅 찾기 운동을 전개했다.
국가 발전에 헌신적인 자세가 되어 있는 초급 장교들(소위부터 소령까지)에게 “우리의 구강토인 만주땅을 기필코 찾자. 구강회복이 군복을 입은 장교로서 국가에 보은하는 길이다”하면서 필자가 군복무하는 기간(1972-1978년)에 평일 낮과 퇴근 후 야간과 휴일에는 쉼 없이 동료들의 가정집을 순회하며 우리 고대사 연구와 만주땅 찾기 방안 마련을 위한 집회를 계속했다.
그 만주땅 찾기 운동이 구강회복 운동이고 그때 발견한 자료가 환단고기였다.
한글로 된 환단고기 전집을 저자인 임승국 교수가 직접 우리 집회에 참석하여 강의도 했고 회원들이 모두 환단고기 전집을 구입하여 탐독하고 단행본인 단군세기·삼성기 상하·북부여사·규원사화·태백일사도 구입해 읽으면서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선생께서 구강회복을 일컬어 ‘다물(多勿)’이라 하셨으므로 우리 만주땅 찾기 운동을 ‘다물운동’으로 정하고 집회 명칭을 ‘다물회’로 하게 되었다.
다물운동을 하던 우리 다물회 회원은 전부 20대로서 청춘의 피가 끓는 팔팔한 젊은 사나이들이었다.
밤새워 술 마셔가며 가족들의 적극 지원하에 정말 열심히 대화하며 국가정책에 ‘다물’운동을 반영시켜 전국민 다물운동을 전개하여 기필코 우리의 구토를 회복하고자 합리적인 방안 모색에 여념이 없었다.
역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이런 다물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들이 사리사욕 추구가 아니라 멸사봉공의 자세로 국력 배양과 애국 애민의 자세로 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그랬더라면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인 ‘홍익인간 이념’ 덕분에 우리 민족의 강보에 싸여 보호받고 발전해온 중국 지나민족과 일본이 우리를 업신여길 엄두를 못 냈을 것이며, 중국은 동북공정의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며, 일본은 자기들이 날조한 서기로 우리나라를 여전히 식민지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이 우리 땅 만주를 불법 점거하고 일본이 대마도를 불법 점유하는 사태가 종결되어 우리에게 불법 점유 영토를 반환했을 것이며, 또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망발을 해대는 행태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토 회복에 대한 의지와 아울러 그 근거가 되는 역사서를 적극 활용할 때 국제사회가 우리의 노력에 동참을 할 명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 자체의 노력 없이는 아무리 고토 회복의 여건이 조성되더라도 그 성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뜻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 것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 역사 왜곡 세력의 해악
우리나라에 3대 사기(거짓)가 있는데, 그것은 부정선거,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 하는 것, 중국에 사대굴종하고 일본 식민사관에 동조하면서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단정한 것이다.
역사에 관해서 우리나라 3대 역사기관이라고 하는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야말로 거짓 위증 집단이다.
"이들이 국가와 민족에게 끼치는 해악은 부정선거와 5·18 왜곡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이것은 국민의 정신을 우울증에 빠트리고 후손들의 자신감을 빼앗는 죄악이다.
이들 역사 왜곡 단체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반국가세력이다.
하루 속히 신채호 선생의 다물 정신으로 돌아가 환단고기를 정통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