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원로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지난 7일 오전 4시 30분(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이 소식을 전하며, 평소 심장 질환을 앓던 고인의 직접적인 사인은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라고 밝혔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화장이 진행되었으며, 오는 12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에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고 추모 공간을 마련하여 고인을 기릴 계획이다.
한국 영화계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시대를 풍미한 한 명의 전설을 잃게 되었다.
2010년 '영화인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배우 김지미.사진=연합뉴스
김지미는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나, 덕성여고 재학 중 김기영 감독의 '길거리 캐스팅'으로 17세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후 예명 '김지미'는 곧 한국 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성공적인 데뷔 후 이듬해 멜로 영화 '별아 내 가슴에'(1958, 홍성기 감독)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이후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 박종호 감독), '장희빈'(1961, 정창화 감독), '불나비'(1965, 조해원 감독) 등 196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기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세련되고 도시적인 '팜므파탈' 이미지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한국 영화사 쓴 김지미 별세…향년 85세
작품 700여편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끈 원로 영화배우 고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사진은 데뷔작인 '황혼열차'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모습.사진=연합뉴스
김지미는 700여 편에 달하는 출연작을 통해 연기자로서 넓은 지평을 보여줬다. 특히 김수용, 임권택, 김기영 등 당대 거장들과의 협업은 그의 연기력을 더욱 빛냈다.
'토지'(1974, 김수용 감독)에서는 대지주 가문의 안주인 역을 맡아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영화 '만추'의 리메이크작인 '육체의 약속'(1975, 김기영 감독)으로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선 중년 여성을 연기한 '길소뜸'(1985, 임권택 감독)은 후시 녹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완숙한 연기를 선보여 그의 연기력 백미로 꼽히며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할리우드 스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견될 정도로 화려했던 최무룡, 나훈아 등과의 결혼과 이혼 역시 스타로서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사 쓴 김지미 별세…향년 85세
작품 700여편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끈 원로 영화배우 고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사진은 영화 '인생은 나그네길'에 출연한 배우 김지미 모습.사진=연합뉴스
그는 연기 활동을 넘어 제작자와 영화 행정가로서도 한국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85년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1986,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계 여장부'로 불리며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 영화계의 권익 보호와 발전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지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서 팬들과 만난 원로배우 김지미.사진=연합뉴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16년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0년에는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화려한 여배우'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김지미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 "배우로서, 인생으로서 종착역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 돼 간다"며 "저에게 사랑을 주신 여러분 가슴속에 영원히 저를 간직해주시면 고맙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바 있다.